그 전쟁 같은 수면 속에서 따듯한 체온하나가 나의 손을 잡고 육체를 끌어안는다. 폐잔병인 나는 양수 속에 잠겨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안정적이고 포근한 온기 속에서 휴식을 취하기를 잠시, 나의 평화에 방해를 받고 눈을 떴다. 상념의 우물에서 나를 끌어올린
조잡한 소리들은 이제 그만 현실과 맞부딪혀야 할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갈 곳이 있음에 행복한 표정으로 두 다리를 움직인다. 나는 정처 없이 떠도는 마른 나뭇잎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에 섞여 바람을 타고 땅위를 밟는다. 애초에 챙기고 나간 게 없어 가지고 온 것도 없는데, 손끝에 걸린 짐의 무게가 유난히도
버겁다. 생색을 낼 정도로 긴 시간동안 떠나 있었던 것도 아니건만 밟고 있는 땅은 낯설고 새로웠다. 들이 마신 공기 속에서 티끌만
청량한 5월의 바람이 스쳐간다. 그 상냥함에도 몸이 부서질 것만 같이 고단하다. 목적이 있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 단조로운 안내
방송 소리. 해후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이 공존하는 이 공간 안의 모든 것은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부적응 중인 나 하나를 비웃는다.
모든 풍경은 나 하나를 배제시켜놓고 어지러이 돌아간다. 무기력한 갈대 같다.
